단색화 4인방 ❸ 윤형근, 검은 기둥에 담긴 삶의 무게
커다란 캔버스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검은 기둥.
화려한 색도, 알아볼 수 있는 풍경도 없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검은색으로 그은 몇 개의 선이 왜 이렇게 깊게 느껴질까?’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윤형근(1928~2007)의 그림에는 그가 살아온 시대와 끝까지 지키려 했던 신념이 담겨 있어요.
오늘은 윤형근의 작품을 조금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① 윤형근의 작품은 검은색 하나로 그린 그림이 아니에요
윤형근의 그림을 처음 보면 먹으로 그린 수묵화를 떠올리기 쉬워요. 하지만 그의 대표적인 회화는 청색과 암갈색 유화 물감을 섞어 만든 작품이에요.
청색은 하늘을, 암갈색은 땅을 뜻합니다. 두 색이 만나 검정에 가까운 깊은 빛깔이 만들어지죠.
그는 이 색으로 넓은 기둥을 그리고, 그 사이에 여백을 남겼어요.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천지문(天地門)’, 하늘과 땅의 문이라고 부른 이유예요.
검은 덩어리만 보이던 화면에서 두 기둥 사이의 빈 공간을 바라보세요. 닫혀 있던 그림이 문처럼 열리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어요.
② 마흔다섯, 고난을 겪은 뒤 자신만의 화풍을 세웠어요
윤형근의 생애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맞닿아 있어요. 학생 시절 시위 참여로 대학에서 제적됐고, 한국전쟁 때는 목숨을 잃을 위기를 겪었습니다.
1973년에는 교사로 일하던 학교의 부정입학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렀어요.
그해, 만 45세의 윤형근은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그의 묵직한 색을 단순한 취향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예요. 부당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인간에 대한 고민이 그 바탕에 있었죠. 조용해 보이는 그림 안에 치열한 삶이 담겨 있는 셈이에요.
③ 물감을 칠하는 것만큼, 스며드는 시간이 중요했어요
윤형근은 바탕칠을 하지 않은 면포나 마포 위에 묽게 푼 유화 물감을 얹었어요. 물감과 기름은 천의 결을 따라 천천히 스며들며 가장자리에 번짐을 남겼죠.
그래서 기둥의 윤곽은 자로 그은 것처럼 딱 떨어지지 않아요. 어떤 부분은 짙고, 어떤 부분은 옅게 퍼집니다.
붓을 움직이는 손과 물감을 받아들이는 천이 함께 화면을 만드는 거예요.
작품을 가까이서 본다면 색의 경계를 살펴보세요. 멀리서는 단단해 보였던 기둥에서 부드러운 번짐과 섬유의 결을 발견할 수 있어요.
④ 김환기는 스승이자 장인이었어요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는 윤형근의 스승이자 장인이었어요. 윤형근은 1960년 김환기의 장녀 김영숙과 결혼했습니다.
가까운 인연이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화면을 만들어갔어요. 김환기가 무수한 점으로 공간을 채웠다면, 윤형근은 넓은 색면과 여백으로 자신의 세계를 펼쳤죠.
해외 작가와의 특별한 인연도 있었어요. 미국 미니멀리즘의 거장 도널드 저드는 윤형근의 작품에 깊이 공감했고, 1993년 뉴욕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리도록 초대했습니다.
서로 다른 배경에서 출발한 두 작가가 작품을 통해 교감한 만남이었어요.
⑤ ‘윤형근의 집’에서도 그의 그림을 읽을 수 있어요
윤형근은 작품에 그 사람의 삶과 인품이 드러난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그림만큼이나 진실하게 살아가는 자세를 중요하게 여겼죠.
그 태도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2026년 9월 일반에 공개된 서울 서교동 ‘윤형근의 집’이에요.
그가 생활하며 그림을 그렸던 이곳에는 작업실 바닥의 물감 자국부터 오래된 가구와 도자기까지 남아 있어요. 큰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소박한 생활용품에서도 작가의 취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윤형근의 그림이 궁금하다면, 검은 기둥의 모양과 함께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떠올려보세요. 단순해 보이던 화면이 조금 더 깊게 다가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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