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 4인방 ❷ 정상화, 반복으로 완성한 격자의 철학
멀리서 보면 단순한 바둑판 같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도 특별한 이미지나 화려한 색은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 정상화의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냥 네모를 반복한 그림 아닌가?'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정상화의 작품은 '그린 그림'이 아니라 '만들어진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오늘은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거장 정상화에 대해 꼭 알아야 할 다섯 가지를 소개합니다.
① 정상화는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뜯어내는 화가'였다.
우리는 보통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물감을 덧칠하며 화면을 완성하는 과정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정상화의 작업은 정반대였습니다.
캔버스 위에 고령토와 본드를 섞은 재료를 두껍게 바른 뒤, 화면을 접어 균열을 만들고, 갈라진 조각을 하나씩 떼어냅니다. 그리고 비어 있는 공간을 다시 단색의 물감으로 메우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즉, 그는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들어내고 메우는 과정으로 화면을 만들어낸 작가였습니다.
이 독창적인 제작 방식은 지금도 정상화를 가장 상징하는 특징으로 꼽힙니다.
② 작품 한 점을 완성하는 데 1년이 걸리기도 했다.
정상화의 작품은 얼핏 보면 단순해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제작 과정을 알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걸 어떻게 혼자 했을까?'입니다.
균열을 만들고, 하나씩 떼어내고, 다시 물감을 메우는 과정을 셀 수 없이 반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고, 그는 평생 조수를 두지 않은 채 대부분의 작업을 직접 해냈습니다.
생전 그는 "남이 하던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못 하는 것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정상화의 작품은 단순한 격자가 아니라, 반복된 시간이 축적된 결과물이었습니다.
③ 같은 사각형처럼 보여도 모두 조금씩 다르다.
정상화의 작품은 얼핏 보면 컴퓨터로 만든 패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모든 사각형의 크기와 깊이, 표면의 질감이 조금씩 다릅니다.
균열을 만들고, 떼어내고, 다시 메우는 과정을 손으로 반복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같은 칸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단순한 평면이 아니라 수많은 시간이 층층이 쌓인 하나의 물성이 됩니다.
빛의 방향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고, 보는 사람은 반복 속에서 자연스럽게 리듬과 호흡을 느끼게 됩니다.
④ 세계가 주목한 이유는 '한국적인 미니멀리즘'이 아니었다.
2010년대 이후 한국 단색화가 세계 미술계에서 크게 주목받으면서 정상화 역시 해외 미술관과 컬렉터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단순히 '한국의 미니멀리즘'으로 평가받은 것은 아닙니다.
서구 미니멀리즘이 형태와 구조를 단순화하는 데 집중했다면, 정상화의 작품은 반복되는 노동과 수행의 과정 자체를 작품의 일부로 담아냈습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 그의 철학은 다른 추상미술과는 분명한 차별점을 만들었고, 세계 미술계 역시 그 독창성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⑤ 정상화가 평생 반복한 것은 사각형이 아니라 삶이었다.
정상화는 생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이 하던 게 아니라 아무도 못 하는 것을 하고자 했다."
그는 조수를 두지 않고 평생 혼자 작업했습니다.
누군가 대신할 수 없는 반복을 직접 이어가며 자신의 철학을 작품에 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단순한 격자가 아닙니다.
셀 수 없이 반복된 손의 움직임, 그리고 그 시간이 축적된 삶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작업을 계속하면서도 조금씩 더 나아가려 했던 태도.
바로 그것이 오늘날 정상화가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기억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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