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칩 작가 탐구 vol. 11 이건용 Lee Kun-yong 몸으로 그린 선, 세계가 주목한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무언가를 그리는 행위는 보통 종이, 캔버스, 화면을 바라보고 그 앞에서 이루어지죠. 그런데 여기 캔버스를 등지고 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선을 그리고 있는지 보지 않은 채, 팔이 닿는 만큼만 움직여 화면 위에 '흔적'을 남깁니다. 오늘 소개할 작가는 회화가 무엇인지, '그린다'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묻는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입니다.
생애와 작업의 출발 - 전위미술을 향한 갈증, 철학과 함께 자란 작가
이건용은 1942년 출생으로, 한국 실험미술과 행위예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작가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가를 꿈꿨고,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책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자라며 일찍이 철학과 예술에 관심을 가졌다고 해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고민했던 사람이었던 셈이죠.
1963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지만, 당시 유행하던 앵포르멜 회화에 쉽게 매료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학생 시절부터 미술서적과 철학서를 탐독하며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이죠. '새로운 미술', '전위적 미술'에 대한 갈증은 그를 한국 현대미술의 실험적 흐름을 이끈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로 이끌었습니다.
한국 전위미술의 중심에서 독자적 노선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죠.
특히 1973년 파리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여한 경험은 그의 작업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예술의 매체는 돌이나 나무 같은 대상화된 사물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 다시 말해 작가 자신의 몸 자체가 예술의 매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이후 이건용의 작업은 '신체'와 '행위, 그리고 그것이 발생하는 '장소'와 '관계'를 핵심 축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작품 세계 - 몸이 그린다, 그리고 회화는 다시 정의된다
이건용의 작업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는 신체입니다. 그는 회화를 단순히 눈으로 보고 손으로 옮겨 그리는 결과물로 보지 않아요. 오히려 몸이 움직이고, 물감이 닿고, 평면에 흔적이 생기는 그 과정 전체가 회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의식이 초기 설치 작업 <신체항>에서 이미 드러납니다. 1971년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어느 공사장에서 발견한 나무뿌리를 전시장에 옮겨온 작업으로, 미술 바깥의 현실을 전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시도였습니다.
이후 그의 관심은 점점 더 '몸'으로 이동합니다. 1975년 <장소의 논리>는 공간을 인식하고 다시 정의하는 매개가 되었고, 이건용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Bodyscape> 또한 전통적 회화의 규칙을 의도적으로 해체한 작품이죠. 화면 뒤에 서거나 화면을 등지고, 어깨를 축으로 반복적인 팔 동작으로 선을 긋거나 캔버스 위에 붓의 흔적을 남기는 행위는, '그림'을 몸과 평면, 재료가 부딪혀 생기는 '사건'으로 재해석합니다.
시장에서의 평가 - 실험미술의 거장에서 회화의 중심으로
이건용은 오랫동안 실험미술사 안에서 이야기되던 작가였습니다. 상대적으로 미술시장이나 컬렉터들의 주목을 많이 받던 작가는 아니었죠. 그러던 그의 작업이 동시대 회화의 언어로 다시 읽히며 시장에서 강하게 재조명되기 시작한 건 2018년 무렵부터입니다. 2018년 이전만 해도 이건용의 작품은 메이저 경매에 출품도 되지 않을 만큼 수요가 적고 거래가 활발하지 않았으나 대략 6-7년 사이 캔버스 작품들의 가격이 10-20배 이상 상승했죠.
특히 Bodyscape 연작은 단순히 개념적 퍼포먼스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 회화 시장 안에서도 분명한 시각적 완성도와 독창성을 지닌 작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붓질의 결과를 의도적으로 통제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그래서만 나올 수 있는 유연한 선과 화면의 리듬은 기존 회화와는 다른 차원의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시장에서 이건용이 다시 주목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단색화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다음 축을 찾는 흐름 속에서, 그의 작업은 미술사적 중요성과 현재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실험이 오늘날에도 낡지 않게 읽히는 작가는 많지 않으니까요.
이건용의 작업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림은 정말 눈으로만 그리는 것일까?
회화는 결과일까, 사건일까?
어쩌면 오늘날 이건용의 작업이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동시대 미술이 여전히 근본적인 질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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